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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살았어, 오래된 것이 새롭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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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순천-박구환

잊고 살았어, 오래된 것이 새롭다는 것을

  


2015년 12월 28일(월) 00:00



오래된 것이 ....다시 새롭다.


누군가는 그랬다. 


여행이란 떠나기 직전까지의 설렘 때문에 좋은 것이라고 ...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느닷없는 충동과 순간의 감정이 우선이었던 젊은 날의 몇 년을 제외한 흔히 말하는 어른이 되고 난 이후로는 언제 누구와 어디로 떠날지를 정해놓고 그날이 되면 지루한 일상 뒤로하고 떠나며 시작되는 즐거움이 여행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뜻밖의 일정이 여행이 되고 그 여행이 계획하며 준비했던 어떤 여행보다 의미 있고 값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됐다. 그곳이 바로 순천이다.


순천.


지금이야 순천박람회가 유명한 곳이지만 나에게 순천은 순천만이다. 굳이 60년대 문단의 파란을 일으킨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갈대밭과 유선형의 속살을 드러내는 광활한 갯벌은 마주한 이가 누구든 몽환적 아름다움을 각인시키고야 만다. 나 역시 그 몽환의 세계에 매료당한 이들 중 하나였기에 순천은 언제나 ...순천만이었다. 


그런데...지난 가을 새로운 순천을 만났다.


첫 눈이 예상된다는 일기예보가 있을 만큼 제법 쌀쌀할 늦가을 아침 순천의 원도심인 향동에 자리한 문화의 거리에 가게 될 기회가 생겼다. 얼마 전 새롭게 맡게 된 기획 일에 참고가 될 거라는 지인의 추천이 있기도 했지만 문화의 거리가 가진 오래된 역사의 가치를 새롭게 재구성해 모두가 공감하는 순천의 이야기로 만들어 2015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한 작품이 그곳, 순천 문화의 거리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떤 곳인지, 또 어떤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는지 궁금했다.


출발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외출정도였다.


오래된 도시의 원도심이라는 선입견이 있었기에 한 번 슬쩍 보고 오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문화의 거리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왜 이곳이 새삼 관심을 받는지 알 수 있었다. 500m에 이르는 문화의 거리 양옆으로 늘어선 은행나무는 노란 은행잎을 쉼 없이 떨어뜨리고 있었고 거리는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어있었다. 그것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애타게 기다렸던 첫 눈보다 더 고운 색의 향연이었다. 덕분에 은행나무 거리 곳곳에 들어선 갤러리, 찻집, 레지던시, 문화센터들까지 모두,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노란 길을 따라 순천부 읍성 터로 발걸음을 옮기니 천 년 전부터 순천의 안녕과 평안을 지켜줬다는 신목 팽나무가 위풍당당 서있었고 옆으로는 복원이 시작된 읍성 터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몇 년 전 문화의 거리에 들어온 순천의 젊은 예술가들은 이런 순천의 오래된 이야기를 테마로 원도심 곳곳 역사적 공간에서 즐기는 문화상품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천년 순천의 과거를 되짚은 의미 있는 과정임과 동시에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저력이 되고 있다. 1980년까지만 해도 사람들로 북적였던 곳이었다지만 2015년 늦가을의 향동은 쓸쓸했고 스산했다. 하지만 그것은 외롭고 어두운 느낌이 아닌 온몸으로 만끽하고 싶은 운치였고 낭만이었다.


향동에서 만난 최고의 아름다움은 마치 미로처럼 이어진 오래된 골목길이었다. 좁고 기다란 골목에 들어서니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어린 날의 기억들이 생생히 되살아났고 어느 집 대문이 열리면 그 옛날 친구가 웃으며 다가올 것만 같았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고 오래 머물고 싶어서 천천히 걸었고 생각보다 긴 시간을 골목길 안에서 보내고서야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그 뒤로도 한동안 긴 여운이 남았다.


향동에서 만난 마지막 감동은 문화의 거리 안쪽으로 쭉 걸어 올라가서 만난


벽화마을 공마당 둘레길 에서였다. 순천향교 뒤편으로 자리한 청수골 공마당 일대는 옛날 사람들이 공차고 놀았던 곳이었다. 공마당으로 불리게 된 연유도


물론 그 때문인데 몇 년 전 마을 공동체와 공공미술이 만나 생태와 문화를 함께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공마당 입구에서 둘레길을 따라 걷다보면 멀리 순천만까지 조망할 수 있어 관광객들이 부쩍 찾고 있다고 한다.


오래된 것들의 소중한 가치를 다시금 되살려내고 있는 순천의 원도심과 문화의 거리. 텅 비어 있던 거리에는 예술인들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고 거리를 찾는 시민, 관광객이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예술문화행사가 기획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북적거림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멋진 곳이었고 오래된 것들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의 깊이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새롭고 낯선 것들을 향한 무한애정을 쏟고 있다. 새로움을 쫒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일지 모른다. 그 욕망의 결과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는 과연 잊고 사는 것일까? 모르는 것일까?


오래된 것이 다시 새롭다는 사실을 ..



박구환 프로필-조선대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 순수미술과 졸업-개인전 36회, 단체 및 초대전 500여회 참여-뉴욕아트페어, 한국국제아트페어, 아시아현대미술쇼_홍콩, 람사르총회 기념특별전 참여-현재 전업작가, 광주시미술대전 등 초대작가, 광주현대판화가협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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