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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저널 2009 5월호 쉼이 있는 삶 ‘슬로우라이프’를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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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그림 그리는 화가 박구환 

쉼이 있는 삶 ‘슬로우라이프’를 새기다 



판화작품의 에디션 넘버링이 끝나는 순간 원판이 모두 소멸되어 사라져버리는 독특한 제작기법과 자유로운 색채와 자연스런 표현을 통해 회화적인 느낌이 강렬한 목판화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박구환작가를 만나기위해 전남 광주를 향해 달려갔다. 도심지 한가운데서 외딴섬처럼 자리한 작업실에서 그가 칼로 그림 그리듯 펼 처낸 화면들과 마주하는 순간. 느린 휴식이 있는 삶. ‘스로우라이프’를 떠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취재 구선영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소리의 바다. sea of sound. 작가 박구환을 목판화가로 우뚝 세운 심벌마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2002년 이후 남해. 완도든 여유로운 남도의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마을과 집, 들판과 꽃, 그리고 사람들의 움직임을 화면으로 포착했다. 그가 구성해내는 단순하고 절제된 화면과 파스텔 톤의 색감은 꾸밈이 없고 유연하여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한 휴식으로 이끄는 마력이 있다. 그런 이유로 ‘소리의 바다’ 시리즈는 해를 거듭할수록 두터운 애호가 층을 형성하며 지소되고 있다. 

“슬럼프에 빠져 작업실을 떠나 낚시터를 전전하던 시절이 있었죠. 그때 대자연이 열리는 새벽의 풍광 속에서 ‘존재’의 의미에 가닿는 경험을 반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스치듯 쉽게 봤던 자연이 가슴 깊은곳을 베고 스며들며 하나가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그때부터 자연이 들려주는 음률에 귀를 기울였고 그것을 형상화한 소리의 바다 연작이 태어나게 됩니다”. 

소리의 바다에는 쓸쓸하기까지 한 남도의 풍경 속에서 자연과 호흡하며 펼쳐지는 농부들의 움직임이 자주 등장한다. 자연에 순응하는 그들의 삶에서 욕망으로 가득찬 오늘의 도시와 도시민의 잃어버린 안빈낙도를 목격한 작가는 그동안 추상적인 작품세계를 걷어내고 리얼한 자연의 품으로 성큼 다가섰다. 작가 자신이 발 딛고 살고 있는 남도의 풍경과 서정이 우리시대가 갈구하는 휴식이 있는 삶, 슬로우 라이프 그 자체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한국적인 서정이 가득한 그의 작품들은 대만과 일본, 뉴욕등지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그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를 남다른 작업과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거친 질감의 베니어합판만을 고집하여 10도에서 15도에 이르는 색을 자유롭게 구현하며 회화 같은 판화를 선보이고 있다. 표현하고 싶은 색의 수만큼 합판을 파내고 인쇄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작업의 고단함과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판화작품의 에디션 넘버링이 끝나는 순간 원판이 모두 소멸되어 사라져 버리는 제작기법 역시 독특하다. 또한 에디션 넘버를 짜게 매기는 작가로 유명하다.  큰 작품은 10~15, 소품은 20에서 에디션 넘버가 끝나기 때문에 그의 판화 작품은 희소가치가 높다. 

손끝의 정교함과 인내력, 뛰어난 미감을 필요로 하는 그의 작품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판화인쇄의 거부감은 사라지고 판화역시 하나의 예술 표현방식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 그에게 어느 한 논객은 ‘아름다운 검객’이라는 비유를 들어 칭송하고 있다. 칼로 그림을 그린 듯 회화적인 판화를 구사하고 있다는 뜻에서다. 

‘아름다운 검객’으로 불리기까지 칼을 잡은 그의 손은 쉴 새 없이 목판 위를 질주해왔다. 조선대 회화과 졸업과 동시에 개최한 개인전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다색판화의 아름다움과 열정적인 제작과정에 매료되어 지금까지 27번의 개인전을 열어왔다. 우리는 지금 수없이 반복되는 산통을 거듭하며 작가가 극복해낸 목판위에 색의 향연을 만나며 휴식을 떠올리고 있는 셈이다. 작가는 최근 담양의 한적하고 아름다운 농촌마을에 새로운 스튜디오를 짓고 이다. 안빈낙도한 남도의 풍경과 삶속으로 ‘더 빠져들고 싶다’는 게 이유다. 오색찬란한 봄의 한가운데서 그의 칼날이 스쳐지나간 편안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거닐며 진정한 슬로우 라이프를 음미해보자. 



주택저널 2009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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